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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책 서평] 몰입의 즐거움

몰입의 즐거움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서평을 작성하기에 앞서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를 말하고자 한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로먼 크르즈나릭이 쓴 '인생학교 일'에 있는 책 추천이다. '인생학교 일'에서 말하는 천직이란 무엇인지 더 자세히 알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직업선택에 관한 도움을 얻고자 읽은 책이었지만 이 책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책의 내용은 인간의 일상적인 하루에서 시작하여 우주와의 관계에서 끝난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하루'와 '우주'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 가지만 저자는 '흐름'이라는 키워드로 두 가지 상이한 단어를 연결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주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하루는 그 흐름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 연결고리라고 한다. 우주의 크기와 인간의 크기는 비교조차 힘든 차이가 있지만, 인간의 삶 속에 사건이라는 것에는 파급효과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가 파장을 일으켜 세계라는 큰 존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이 세계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것이다. 하루를 밀도 있게 살아간다면 인간의 삶은 우주의 거대한 흐름 속에 의미 있는 부분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밑줄을 그으면서 읽어보고,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아 책을 접으면서 다시 읽어보았다. 그러자 책의 내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상상력'이 필요했다. 우주의 흐름 속에 있는 인간을 상상하고, 인간의 삶 속에 있는 하루를 상상했다. 그리고 '하루' 속에 있는 무수한 선택들을 상상했다. 저자는 하루라는 시간 동안 우리가 내린 '선택'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순간은 '몰입'을 경험할 때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몰입'이란 인간의 감정, 목표, 그리고 생각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흔히 말하는 '물아일체의 경험'이라고 한다. 몰입의 조건은 명확한 목표와 피드백이 있는 것이고 과제의 난이도와 본인의 실력이 비슷할 때이다. 삶의 부분들 중에서 '일'이 가장 몰입의 조건에 부합하며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여가, 인간관계에서도 몰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 여가, 인간관계들을 통괄하는 몰입의 조건은 '자기 목적성'이다. 자기 목적성이란 이해관계가 엮이지 않은 상태에서 대상 혹은 행동을 그 자체로 좋아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의 삶에 주인인식을 갖었 능동적으로 자신의 가치와 부합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 목적성을 가지고 '몰입'의 경험을 삶에 채워 넣었을 때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필자는 책을 읽으며 '관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가장 인상적이였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관심을 사심 없이 기울일 줄 모르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삭막한가. 그런 사람은 경이를 느낄 줄도 모르고 놀라 줄도 모르고 감탄할 줄도 모르며, 인간의 공포와 편견이 정해 놓은 울타리를 감히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 필자는 진로를 고민할 때 미래에 유망한 직업이 무엇인지, 돈을 잘 버는 직업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현실적인 것을 무시한 채 이상만 보다가는 사회에서 도태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필자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은 '나'답게 사는 것이다. 미래 유망 직업과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쫓는 게 '나'답게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저자의 말대로 라면 필자는 사심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삶은 울타리 속에 갖힌 삶이 될 것이다. 사심을 갖지 않고 순수한 의도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닳게 되었다.

 

추가적으로 책을 정독한 이후에 책의 제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책의 원제는 'Finding Flow'이다. 책의 내용상 'Flow'는 몰입과 흐름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몰입의 즐거움'보다는 간결하게 '몰입'이라고 제목을 정하는 것이 책의 내용을 더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초, 위 글을 작성할 때 처럼 나는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당시 이렇게 작성하였다.

미래 유망 직업과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쫓는 게 '나'답게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2020년, 24살의 나

2022년의 나는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쫓고 있다.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가?

막학기가 시작된 오늘, 나는 2022년의 남은 4개월 동안 미친듯이 살아가자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게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쫓는다면 나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 살지 않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지 모른다.

 

현재 나는 금융에서 IT관련 직종을 준비하고 있다. 원래 전공인 '경제학'과 복수전공 중인 'IT학과'를 융합하여 취업 시장에서 잘 팔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나를 이쁜 포장지에 감싸서 비싼 값을 주고 파려는 행위일 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읽고 있는 개발 관련 서적인 '테스트 주도 개발'을 읽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개발을 함에 있어 단순히 능력있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세상에 도움을 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개발자들은 코드에 자신의 철학을 담으려고 하였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나도 어쩌면 IT분야에 종사하면서 내가 원하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을 지 모른다는 희망을 느꼈다.

 

나는 기업에 잘 보이기 위해서만 노력하는 나를 비판했지만, 지금 생각에는 나를 너무 몰아 세웠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꿈과 이상만을 보고 나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니, 어쩌면 현실에서도 이상을 바라보며 살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나는 이상만을 쫓을 때 생기는 불안감을 견디고 싶지 않다.

 

내 생존이 우선이다. 나는 사회에서 사회인의로서 나의 가치를 키우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간다면 나름 괜찮은 전략이라고 본다. 2년 전에는 삶에 어떤 이상적인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연듯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에 집착하는 내 모습을 볼 때가 종종 있다. 아니, 많이 있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살기에는 힘이 없다. 능력과 돈 모두 부족하다.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다면, 내 힘을 길러야 한다. 나는 그 힘이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뜬 구름 잡지 않고 정말 사회 혹은 집단에 기여할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그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2022.09.01

 

 


 

2023.10.30

 

위 글을 작성하고 나서,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1년전 바라던 삶을 살고 있다. 주식을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이름을 말하면 알 수 있는 증권사에 다니고 있다. 그럼 나는 행복했을까?

 

사회인이 되어 돈을 벌고, 부족함 없이, 오히려 풍족하게 지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행하게 느껴졌다. '몰입'이라는 가치를 잊어버린채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살았다. 그 안에서 남은 것은 공허감과 어느정도의 돈이였다.

 

이상만 쫓던 나는, 현실에 타협하여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인간이 되었다. 사회인이 되었으며, 주변에서 부러움을 받았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삶과는 많이 멀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보니, 작년에 글을 쓸때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안정'이라는 욕망에 짙눌려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내가 저런 생각을 했다는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을 내가 정의할 때, '나'로서 존재하고 싶은 사람이다. 나의 욕망에 충실하지 않고, 타자의 욕망을 따라갈 때, 남는 것은 공허함이었음을 깨닳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확실한 것은 더이상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다.